2년 전, 회사가 부도났다. 각자 도생이 길로 들어섰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누군가들은 관망했고, 누군가들은 새로운 초지를 찾아 떠났다.
불안하진 않았다. 망하는 것도 징후가 한참이 흘러도 이상할정도로 잘 버티기 때문이다.
회사가 그렇게 망하고도 두렵지 않은 이유였다.

나는 희구했다. 내가 가족과 나의 삶을 위해 내가 포기해야 했던 것들 중 하나 '생계'였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가 아닌 멈춤이니 누구도, 심지어 나 조차도 미안하거나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리 만큼 자유를 느꼈다. 마치 오랜 시간 잠수했던 잠수함이 수면에 나와 해치를 열었을 때 마주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느낌 처럼.
그리고 50을 맞이했다.

눈을 떠보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운명은 고맙게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었다.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그 일을 해나갔다. 그 안에 새로운 인연도 맞이하면서 그들과 함께 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니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눈에 들어왔다.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균열도 생겼다.
하지만 그동안 참아왔던 응집과 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이즈일 뿐이었다. 돈을 위해 일했다.
어디까지 벌수 있을까 도전하는 마음도 생겼다.

회사생활 탈출이 준 것은 그런 야생의 자유와 나의 선택의 자유였다.
올해 2년차가 마무리 되어간다.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 보면서 내가 기준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했다.
책들을 보면서 알려준 조언대로 '하기 싫은 것' 부터 정리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이상하리만큼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잘 했어라고 칭찬하는 것 같았다. 즐겁거나 희열을 느낀건 아니다.
단지 '아 내가 이걸 싫어하면서 억지로 했구나.'를 새삼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의 빈자리가 하나씩 생겨가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그 자리를 차지할법도 한데, 아직 아니었다. 그냥 그 빈자리는 빈자리데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빈자리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바로 '의미'였다.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에게 의미 있는 삶과 행동 그리고 나의 생각은 무엇일까?
왜 사는가와 같은 공격적이고 선문답적인 질문이 아니라.
마치 스스로 질문하듯 소리없이 스며들었다.

삶을 이끄는 나만의 가치,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50이 되고 나니 단순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삶 이상의 꿈과 희망 그리고 희구
AI를 활용하여 이런 저런 질문과 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철저히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과 관찰로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성찰'이었다.
여전히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가슴이 설레고 마치 나에게 큰 망치같은 충격적인 임팩트도 없다.
그렇다고 그것에 조급해서는 더욱 안되는 것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아니 그리 거창할 것도 아니다.라고
AI가 조언해주었다.
당신의 하루에 생각과 행동에 작은 의미를 부여해보라고.
의미를 담은 하루를 정리해 보라고.
일기가 나의 연대기라면
의미를 담은 일기는 나의 철학책이 될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그 삶의 의미가 없다면, 그 삶은 공허함으로 치를 떨 것이다.
아무리 천재라도 그 삶의 의미가 없다면, 선민의식으로 타락할 것이다.
아무리 권력자라도 그 권력에 맞서는 힘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 삶은 피패할 것이다.

'물질만능주의, 자기 과시하기 바쁜,그래서 나를 대신하는 물질로 경쟁하고 자랑하기 바쁜 삶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오히려 나를 가두는 것이 아닐까.'
아...더 외로워져야 겠구나. 세상의 시선으로 부터 떨어져야 겠구나.
세상이 바뀌고 인간이 영역보다는 기계와 AI가 목적지향적이고 생산적인 영역을 빠르게 잠식할 것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인간은 그 보다 상위에서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존재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는 근육과 힘을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한 거였구나를 깨닫게 했다.
호기심과 궁금증 탐구를 하면서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생각의 근육을 키워하는 것이다.
결국 생계와 생존을 위한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내가 아름답게 내가 창의적으로
세상을 그려나갈 수 있는 예술가적 가치를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타인과 더불어 행복을 만들어가는 삶도 가치있을 것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 부와 명예를 얻는 것 또한 의미 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 헌신하며 사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결국 나와 더불어 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얻는 비젼과 항해경로를 만들어 가는 개척자의 삶, 선구자의 삶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 적진을 뚫고 전우를 대신해 뛰어드는 병사의 카타르시스.
매순간에 의미를 두는 것 자신의 생을 돌보지 않고 뛰어드는 극단의 시대를 피해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인가.
지금은 지구촌 어느하나 우리 나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내가 사는 이곳에 대한 질투와 집착을 압도하는 시대 아닌가.
그 속에서 나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에 비하면 얼마나 축복 받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OECD 자살률 1위라는 모순되고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현실인가.

가난할 땐, 우울증이 없었다 한다.
그만큼 생존이 절박했고 배고픔을 해결하는게 본능에 가까웠고, 우울함은 사치였기 때문이라 한다.
타인의 시선, 세상이 나를 바라 보는 시선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일까. 그런 시선에 내가 공허하고 비참하고 모자르니 느끼는 게 우울증일까.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여백은 잊지 않나. 힘들고 괴롭고 슬플수록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최소한 배고픔을 잊을 한끼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50대 삶의 의미를 다잡기 위한 세가지 마음가짐.
첫째. '정리'에서 시작해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가자.
남의 눈치를 볼 나이가 아니다. 의견이 다르면 그 다름의 이유를 말하고, 선과악 호불호는 곧 내면의 감정과 목소리기 때문에 그것에 귀 기울이고 행동으로 옮겨야 속병이 안 날 것이다. 잊지말자,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고 스트레스는 상대적인 각자의 고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와닿는 것이라고.
그러니 의미 없이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지말고, 이제는 마음의 짐을 먼저 정리해보자.
그 빈자리에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보자. 그렇게 설레는 하루를 맞이해 나가자.

둘째. 성취가 아닌 '성장'에 주목하자.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영혼과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사는 선배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들이 그 뜻을 이룰때 모든 것을 보상받는 듯 했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영혼은 말라가고 있었고 그들의 분노와 후회는 육체적, 정신적 흉터를 치유하지 못하고 덮어두고 살다가 병으로 재발견 하였다.
마치 달표면의 알 수 없는 크레이터 자욱들로 그 상처를 헤아리는 것처럼.
결과중심이 아니라 내가 희구하고 갈망하고 탐구하고 싶은 주제와 목표를 가지고 스스로 움직이는 에너지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 가보자.
인간관계는 자석과도 같고, 나와 같은 누군가는 분명히 있었다.
그 순수한 열정이 드높은 가치를 구현하고 성취하는 데 천군만마와 같은 에너지를 줄 것이다.
그 뿌듯함이 주는 충만함이 따스한 이불이 되어 줄 것이다.

셋째.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헤리티지를 생각하자.
어느 모임에서 나에게 질문하나를 받았다. 자녀를 위해 물려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생각지 못한 추상적인 질문에 나는 당황했을 법도 한데, 생각외로 나는 즉문에 즉답을 했고, 지금도 그 때 내 무의식의 대답이 새삼 놀라운데 그것은 바로 '정신'이었다.
그때 말한 정신은 바로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는 시야와 생각 그리고 기준을 가지고 사는 나침반 같은 의미였다.
나와 내 아이는 다른 존재다. 나의 철학을 물려줄 생각이 없는 이유다. 아이는 아이의 시선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게 부모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배려라 생각한다.
아이도 아이만의 의미를 담는 그릇과 생각의 힘 그리고 창조의 에너지를 키워야 진정 내가 말했던 '정신'을 오롯히 스스로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이야기 나의 시선으로 느낀 점을 교감하면서 아이에게 후배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서번트의 삶이 바로 '의미의 확장'으로 서로 영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나의 두번째 인생의 키를 잡고 가보려 한다.
뚜렷한 방향과 목표가 없더라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며 나를 완성하는 나머지 50년을 참되고 진솔하게 살아보려 한다.
미뤄왔던 일들을 설레이며 해치울 것이고. 눈치보면 망설였던 장난들도 해보며 살 것이다.
혼자라 생각하니 더 없이 자유롭고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는 그렇게 설레일 수 없다.
젊은 날 물질이 이끄는 삶이 먼저 였다면, 이제는 호기심이 이끄는 삶을 살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감하며 삶의 의미에 대한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어릴적 가슴설렜던 시공간을 넘나 들고 싶다.그리고 누구도 나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기시감과 통찰력 있는 내공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
50대는 완성이 아니다.
50대는 자유의 시작이다.

의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읽을 교과서
#1. 아주 작은 습관의 힘_제임스 클리어
#2. 스토리_박웅현
#3.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_브로니웨
#4. 죽음의 수업_미셀 드 몽테뉴
#5. 데카메론_보카치오
#6. 마크 맨슨 책 전부
'GDC 지금이 가장 젊기에 챌린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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